내가 가는 길엔 저승사자도 잠시 기다려준다!

  지난 7월 1일 번개탄을 이용해 동반자살을 시도한 여성 2명을 극적으로 구조해 낸 강북경찰서 실종수사팀 김시동 경사의 수기입니다.


2013년 7월 1일 AM 06:20.

  전날 당직 근무가 마무리되는 아침 시간은 몸이 가장 피곤한 시간이지만 사무실 청소, 업무 인수인계 준비로 가장 분주한 시간이기도 하다.

  전일 사건을 정리하고 잠을 깨기 위해 샤워실로 향하려는 찰나에 '따르릉' 울리는 불길한 전화벨 소리.

  나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그 시간에 울리는 전화벨은 보통 전화가 아니라는 것을........

  전화를 받아 신고내용을 들어보니 신고자의 딸 김 모양(13세, 여)이 새벽 3시경 유서 4장을 써놓고 집을 나가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다급해졌다. 신고를 받는 동시에 프로파일링 프로그램에 김 양의 인적사항을 입력했고, 곧바로 실시간 위치추적을 통해 김 양의 최종위치가 양천구 목동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 즉시 양천경찰서 실종팀에 방범순찰대와 지구대를 동원하여 수색을 시작하도록 요청했다.


AM 07:00.

  사무실을 문을 열고 '고생했어!'라고 인사하며 출근하시던 팀장님은 심각한 내 표정을 보고 심상치 않는 사건이 접수됐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리고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 김 양의 집 주변 CCTV를 통해 집을 나갈 당시 옷차림과 행선지를 확인하기 위해 현장으로 출동했다.

  그런데... 주변에 CCTV가 없었다.

  그렇다면 유일한 단서는 주변 골목에 주차된 차량의 블랙박스.

  염치 불구하고 차량 소유주에게 전화했다. 예상했던 대로 차주는 왜 꼭 내차 블랙박스를 봐야 하냐며 짜증을 냈다. 자초지종을 설명한 끝에 어렵사리 주차 차량의 블랙박스 칩을 챙겨 사무실로 들어와 내용을 확인했지만, 한밤중이라 그런지 온통 까만색뿐이었다.

  간간이 지나는 차량 불빛만 보일 뿐 사람의 형체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AM 09:00.

  부모와 함께 휴대폰 대리점으로 가서 김 양의 휴대폰 사용내역을 확인해보니 김 양이 새벽 3시경부터 "010-7753-****" 번호와 문자메시지 교환을 한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사무실로 돌아온 우리 팀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일을 분담하여 통신자료제공요청 공문을 만들고, 양천경찰서에 전화하여 실종자 발견 여부와 수색범위를 다시 확인했다.


AM 11:00.

  통신자료요청자료가 도착했다. 실종자와 문자메시지를 교환한 전화번호 "010-7753-****"의 명의자 고 모양(25세, 여)의 주소지가 강서구 등촌동으로 밝혀졌다.

  팀장님과 이승윤 형사, 그리고 실종자의 부모와 등촌동으로 향했다.

  주소지 문을 두드리자 50대 후반의 여성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문을 열었다. 여성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해당 전화번호가 작은 딸의 것이라며 아침 7시경 집 앞 승용차에서 어린 학생과 같이 있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 학생이 우리가 찾는 김 양이다!


PM 13:00.

  고 양의 휴대폰 위치추적 결과, 휴대폰은 강서구청 주변에 있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매의 눈, 진돗개의 코, 토끼의 쫑긋한 귀로 수색을 시작했다.

  주차된 차량과 지나가는 차량 모두를 확인했다. PC방, 모텔 등을 구역으로 나누어 우리는 김이 날 정도로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누볐다.


어느덧 PM 15:30경.

  강서구청에서 약 200여 미터 떨어진 모텔 안쪽 주차장에 번호판이 가려진 흰색 아반떼 승용차 한대를 발견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가림판을 들췄다. 맞다. "19어○○○○호"  드디어 찾았다.

  그런데 차량 보닛 윗부분이 차가웠다. 주차한지 꽤 시간이 흘렀다는 뜻이었다. 감이 좋지 않았다. 차량 내부를 들여다보니 타다 남은 번개탄이 눈에 띄었다.

  모텔 카운터의 주인에게 김 양과 고 모양의 인상착의를 설명하고 투숙 여부를 확인하니  여자 두 명이 새벽 6시30분쯤 303호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우리는 303호 문 앞에 섰다.

  제발 살아만 있어달라고 간절히 빌며 초인종을 눌렀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비상키로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모텔 방안에는 온통 번개탄 냄새가 진동을 했고 주변에 약봉지가 보였다. 청테이프로 완전히 밀봉된 창문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너무나, 너무나 감사하게도 아직 두 여성이 의식을 잃지 않은 채 호흡을 하고 있었다!

  김 양과 고 양은 인터넷 우울증테스트사이트에서 만나 같이 문자를 주고 받으며 죽기를 다짐했다고 한다.

  그날 아침 6시경에 만나 고 양의 차량 안에서 맥주와 수면제를 먹고, 가스버너로 번개탄을 피워 자살을 시도했는데 연기가 밖으로 빠져나가 뜻대로 되지 않자 다시 모텔로 이동해 자살하려던 중이라고 했다.

  우리는 하마터면 저승사자의 손에 이끌려 저 세상 사람이 되었을 두 생명의 손을 꼬옥 잡고 모텔 방을 나왔다.

  고 양을 어머니에게 인계하고 김 양을 차에 태워 이동하려는데 소식을 듣고 달려 온 김 양의 부모가 딸을 보자마자 길바닥에 주저 않아 땅을 치며 통곡했다.

  김 양의 아버지가 내게 다가와 갑자기 부둥켜 안으며 말했다.

  "소중한 내 딸을 무사히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경찰관님들은 저희 가족 모두를 살린 것입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라며 연신 감사함을 표했다.


PM 06:00.

  어느새 저녁시간이다. 그러고 보니 당직근무를 하고 아침 점심도 걸렀다. 그런데도 이 가슴을 꽉 밀고 들어오는 뿌듯함은 뭐지??

  모두들 제자리로 돌아갔다. 죽음의 문턱에 섰던 두 생명이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제야 주섬주섬 짐을 챙겨 퇴근하는 길. 나는 '내가 가는 길엔 저승사자도 잠시 기다려 준다'는 말을 가슴속으로 되뇌었다. 나는 앞으로도 결코 저승사자에게 귀중한 생명을 쉽게 내어주지 않을 것이다.


<왼쪽부터 안성근 팀장, 이인수 경사, 김시동 경사, 이승윤 경사>



[2013-07-17, 17:51:40]